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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소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 본문
오늘 쉬는날이기도 하고 아침부터 방청소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방안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가지런히 꽂아놓고 꼼꼼히 하다 보니까 4~5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말았네요.
마지막으로 방바닥과 책상등 먼지가 쌓인 부분들을 닦아내려고 【걸레】를 빨면서 문득 군대생활 하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고 저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군생활 잘 할수 있어!!"라는 다짐을 했었답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하루를 못갔죠.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철원의 육군 【백골부대】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회에서 느껴보지 못한 온갖 괴로운일들과 고통을 겪어야 했죠.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 맛있게 먹고 하고 싶은일 마음대로 하면서 편하게 지내왔던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하려니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선임병들은 어찌나 무섭던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몰래 눈물을 훔쳤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답니다.
※ 해병대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육군이라는 세뇌교육(?)을 2년 내내 받았던 자랑스런(?) 백골3사단 ※
이등별시절때의 이런저런 고생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곤욕스러웠던 것이 【걸레를 빠는 것】이었습니다. 군부대에서는 보통 오후 8시부터 청소시간인데 계급별로 청소담당이 있었답니다. 당연히 선임병일수록 쉬운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이등병이 할일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침상(군인들이 잠을 자는 방바닥)을 치약칠을 해가면서 뽀드득뽀드득하게 닦아내는 것과 【걸레를 빨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걸레를 빨아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걸레를 빨레비누로 깨끗하게 빨아오는 것은 둘째치고 걸레를 짜야 하는데 저는 항상 걸레를 짜면서 한가지 이해 할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걸레는 청소시간인 8시전에 빨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8시 종이 땡! 하고 치면 바로 그 걸레를 사용할 수 있겠죠? 이등병들이 여러명 있을텐데 대략 5시정도에 걸레를 함께 빨곤 했답니다.
걸레를 빨아서 걸레통에 넣어두면 간혹가다가 선임병이 걸레를 잘 빨았나 검사를 합니다. 이때가 바로 또 죽음의 시간이죠.
※ 백골문양이 박혀 있는 티셔츠. 휴가때마다 입고 나왔는데 친구들이 찌질한 짓좀 그만하라고 놀렸던 것이 기억나네요※
지나가던 병장: 누가 걸레를 안빨았어요? 너냐? 너야?
이등병 1: 제가 아직 안빨았습니다!!!
지나가던 병장: 요새 애들 미쳤다.
상병: 이 XXX야! 빨리 안빨아와? 1분 준다.
지나가던 병장이 걸레를 짜본다. 진짜 팔뚝에 핏줄 생길정도로 짜본다.
지나가던 병장: 이거 봐라. 이거 봐라. 물이 뚝뚝 떨어지네. 애들 교육 제대로 시켜라. 나는 담배피러 간다.
상병: 이등병 이 XXX새끼들아! 걸레 제대로 안짤래? 다른 것도 내가 짜서 물이 한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니들 뒤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짰는데 상병과 병장들의 힘은 어찌나 세던지 그들이 걸레를 짜면 걸레에서 물이 폭우 쏟아지듯 뚝뚝 떨어졌습니다.
누가 어떤 걸레를 빨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등병 전원이 한명의 선임병에게 온갖 욕과 갈굼을 당하는 일은 당연했고 이런일이 매일 오후 8시면 반복이 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죠.
하지만 그때 당시에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걸레를 물 한방울 없을 정도로 짜서 보관하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무릇 걸레라는 것은 물기가 어느정도 있어야 걸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내가 잘못 알고 있나?)
그런데 이건 걸레가 바짝 마를 정도로 물을 짜오라고 시키니 미칠지경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대꾸 했다가 【대가리좀 있다고 말대꾸냐?】라는 욕을 듣는 것은 안봐도 비디오기 때문에 묵묵히 걸레에 물한방울 남지 않도록 짰었답니다.
왜 청소를 하다가 이런 추억속으로 잠시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이유는 있었습니다.
2) 선임병들이 이등병들을 갈굴만한 건수가 필요했던 것임.
3) 제대로 키운 이등병 한명, 열명의 상병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이등병의 군기와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함이었음.
정말 파란만장했던 철원에서의 군생활. 돌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을것 같은 악과 깡이 생기도록 도와준 지옥의 그곳. 철원. 가끔씩은 그리울 때가 있네요.
※ 어지간히 추웠던 철원의 날씨탓에 혹한기 훈련이라도 나가면 이렇게 옹기종기 조그만 불하나에 의지하면서 추위를 버텨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