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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망의 날 "공포의 물고기" 본문

오로지 만화 이야기뿐/만화 읽어주는 남자

인류 멸망의 날 "공포의 물고기"

☆북극곰☆ 2010. 6. 16. 10:27














▶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에 소개할 【Ito Junji】의 만화 【공포의 물고기】는 아마추어 만화비평 동아리 【올쏘 - also】에서 활동할 당시, 【올쏘 회지】에 개제하기 위하여 작성한 글로서 일부 편집과 수정을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작성한지 8년정도 된 글이지만 당시에 개인적인 사정상 회지에 개제하지 못한 아쉬움에 이렇게 포스팅을 통해서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보려 합니다. 글 자체가 작품위주의 설명이 아닌 【Ito Junji】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일부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한 편인데 공포만화가 얼마나 흥미로운 장르인가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꼭! 끝까지 확인해주세요 ^^
 
 본문의 내용에서 【공포의 물고기】를 최신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2002년기준으로 최신작이며 현재 그는 수많은 최신작들을 끊임없이 그려내고 있는 중입니다.

▶ 의외로 만화책에는 공포물이 적다?!
 
 인간은 공포를 두려워한다. 동시에 공포를 즐긴다. 다시 말하자면 공포를 유발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그것에 조금씩 접근하며 무서움에 몸을 떨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로 돌아옴과 동시에 "지금까지 느꼈던 공포는 사실이 아니구나." 라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그에 수반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공포물을 즐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공포물" 이란 상당히 매력 있는 문화코드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만화출판물쪽에서는 공포만화가 많은 편이 아니다. 여기서 많지 않다는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하고 있는 만화출판물 중에서 공포만화장르가 차지하는 비율이 타(他)장르 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숫자가 적다는 것은 아님을 유의하자.

※ 국내에 출간된 여러 공포만화의 표지사진. 혹시 감상해본 작품이 있는가? 사진출처는 알라딘 (http://www.aladdin.co.kr) ※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볼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만화란 정적인 그림들의 집합체이다. 컬러도 아니며 흑백으로 표현된다. 영화처럼 화려하고 정교한 "영상"의 움직임과 인간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극한까지 다다르게 만드는 "음향"도 없다. 이렇듯 다른 문화전달매체들보다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공포감을 전달하기에는 수단이 부족하다.

 심지어 갈수록 자극적인 것에서 공포를 느끼려 하는 사람들에게 자칫 어설프게 그려지는 만화는 독자들의 입에서 하품을 나오게 만드는 결과만 뱉어낼 뿐이다. 결국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것" 이 된다는 얘기.

 이런 상황에서 공포물의 귀재로 불리우는 【Ito Junji - 이하 이토준지】는 이러한 단점들을 파악하고, 고민하여 자신만의 공포장면연출을 그려 내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이쪽장르의 독보적인 존재로 발돋음 할수가 있었다.

블랙 패러독스 - 10점
이토 준지 글 그림/시공사
이토준지 공포박물관 1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사
이토준지 공포박물관 10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 화제의 만화가 이토준지, 그리고 그의 최신작 "공포의 물고기"
 
 이토준지의 만화는 어떤식으로든 많은 독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작품들이 많다. 아니, 이토준지의 공포만화컬렉션 모두가 그렇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만큼 스토리에 대한 비평, 그림체에 대한 분석, 그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등을 얘기하는 글들도 많은 편이다. (아마추어 만화비평동아리 올쏘에서도 이토준지의 만화에 대해 분석한 적이 있음. 올쏘 회지 3호 참고)
 
 이미 그에 대한 많은 비평과 분석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이토준지공포만화의 매력을 논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 일수도 있지만 필자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 싶은 작품은 그의 최신작인 【공포의 물고기】이다.

 이토준지의 최신작이라는 문구로 홍보되기 시작한 【공포의 물고기】는 기존에 발간된 그의 장편공포만화인 【토미에】, 【소용돌이】, 【소이치 시리즈】에 비하면 페이지수가 적은 편이다. 이와 상관없이 그가 그려낸 공포만화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지만 무언가 타(他)작품들과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떤 독자들은 【공포의 물고기】를 이렇게 평한다.

 "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많이 부족한 것 같다. "
 " 소용돌이가 훨씬 괜찮은 작품 같다. "
 " 실망이다. 재미없다. "


 위와 같은 평이 많은 편인데 그의 최신작인 【공포의 물고기】가 이런 혹평을 받을 만큼의 작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 절대 아니다. " 미세한 발견들 일수도 있지만 이토준지가 이번작에서 많은 부분에 변화를 시도한 것이 눈에 띈다. 그가 도대체 어떤 변화를 시도했기에【이토준지】의 만화를 좋아하던 독자들이 어색함을 느끼게 된 것일까?

※ 공포의 물고기의 1권과 2권의 앞표지 사진.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쩔수 없지만 가까운 대여점을 이용 하자. ※


어둠의 목소리 궤담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어둠의 목소리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이토준지 공포박물관 2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 "공포의 물고기" 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다른작품과의 차이점

오키나와에 있는 리조트로 놀러가게 된 【타다시】와 【카오리】커플. 냄새에 예민한 【카오리】는 그들의 숙소 안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며 【타다시】에게 불평하고 그런 그 또한 【카오리】에게 짜증을 낸다. 그 와중에 그들은 썩은 냄새의 정체가 " 발이 달린 물고기 "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단순히 돌연변이 생물일 것이라고 생각한 【타다시】와【카오리】는 그들을 반복적으로 쫓아오는 "보행어"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만다. 하지만 이 불가사의한 물고기는 해수욕장을 빠져 나와 일본전역을 습격하기 시작하고 그런 그들의 습격으로 인해 지상에 있는 생물이라는 생물들은 모두 불가사의한 보행기계로 인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하는데, 인간이라고 그들의 습격을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가 【공포의 물고기】의 대략적인 스토리이다. 이토준지의 만화는 대부분 에피소드형식의 단편만화가 많다. 그렇다 해서 단편만화들만 그려왔던 것은 아니고 【소용돌이】, 【토미에】, 【소이치 시리즈】같은 장편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려왔던 그의 장편공포만화들은 형식만 장편일 뿐 장편만화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토미에】의 경우에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토미에 1권】의 이야기가【토미에 2권】의 이야기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이는【토미에 Again】으로 이어지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토미에】라는 중심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녀의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대부분 그녀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남자들)이 반복적으로 교체되면서 일정한 스토리가 없이 【토미에】의 괴기스러운 모습들만 수차례 독자들의 눈을 자극한다.
 
 【소이치 시리즈】 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토미에】와 똑같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소수의 등장인물들만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에피소드를 꾸려나갈 뿐 중심적인 사건도, 【소이치】에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의 태도(토미에와 소이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는 이 만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의아함을 준다. 예를 들어 보자.

 (예1: 소이치의 행동은 정상적인 꼬마아이의 행동이 아니다. 인형으로 선생님의 분신을 만들어 움직이게 한다든지 집으로 놀러온 사촌들에게 못을 이용하여 장난을 친다든지 거미 혹은 모기로 변하여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그것이다.)

 【소이치】의 이런 행동들은 충분히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위에 등장하는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들은 그에 대한 아무런 대응행동도 없을 뿐더러 단순히 그의 행동에 희생양이 되는 꼭두각시 같은 인물일 뿐이다. 

(예2: 소이치 시리즈의 2권인 "소이치의 즐거운 여름방학" 에서 그의 사촌들은 소이치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다가 소이치가 스스로 잘못하여 얼굴에 못이 박히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지만 제3권인 "소이치의 즐거운 일기" 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소이치의 집으로 놀러와 또다시 괴롭힘을 당한다. 멍청하지 않은가?)

 이런구성은 자칫 잘못하면 독자들에게 "스토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흡하다" 등의 이야기를 듣기 쉽상이다. 하지만 이토준지는 공포스럽고, 섬뜩하기까지 한 그림체로 이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체만으로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에게 세밀하고 훌륭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공포의 물고기】는 【카오리】와【타다리】라는 뚜렷한 자기의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토미에】나【소이치 시리즈】같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여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단계적으로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이는 그의 다른작품들처럼 소름이 끼칠 정도의 장면들을 그려내지 않아도 독자들이 【공포의 물고기】라는 만화책속으로 집중 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효과를 낸다. 

 스토리 라인을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기존에 출간된 그의 장편공포만화와는 차이가 나는 스토리구성임을 알수 있다. 이는 사건에 인과성이 뚜렷하게 나타나있다는 특징으로도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보행어의 습격을 받기만 하는 【타다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삼촌에게서 보행기계가 등장하게 된 배경, 대응방법,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스를 분출하게 되는 원인등에 대해서 설명을 듣게 된다. (결국에는 만화의 종반부에서 도쿄대학생들이 보행기계가 미지의 생물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원점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이런 구성은 독자들이 그의 공포만화를 읽은 후에 느끼는 대책없는 황당함을 줄여주고 해당작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하는 요소로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소용돌이 2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지옥별 레미나 - 10점
이토 준지 글.그림/시공사
이토준지 공포박물관 3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 결국 인류는 멸망하는가?

 만화가 엔딩을 향해 갈수록 독자들은 하나의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도시의 모든 생물들이 전염병에 감염되고 보행기계와 결합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는데 【타다시】는 멀쩡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주인공"이기 때문에 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친절하게도 만화의 끝자락에서 【이토 준지】는 그 이유를 독자들에게 명쾌하게 이야기 한다. 그 이유인 즉슨,【타다시】처럼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도쿄대학생들이 자신들 또한 감염이 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면역성에 있다고 그에게 설명 해준다.
※ 면역성이 있어서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타다시는 일본의 모든 생물들이 보행기계와 합체된 것을 보고 경악한다. 과연 그의 운명은? ※

 그와 동시에 절망적인 인류멸종직전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항생물질"이 있다며 【타다시】에게 합류할 것을 권한다. 【타다시】는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이 만화의 커튼은 내려간다. 

 이런 결말은 확실히 기존에 있던 그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엔딩이다. 독자들은 【공포의 물고기】를 통해서 그의 과거작품들처럼 경악과 패닉상태를 느끼면서 책을 덮는 것이 아니라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현재상황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빛을 느끼면서 마지막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인 윌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 와 비슷한 구도 아닌가?)

【공포의 물고기】가 그의 과거작품들과 다른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변화된 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았다. 그리고 【이토준지】가 기존에 공포만화를 그리던 기법을 잠시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 그려본 작품이 【공포의 물고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도는 【공포의 물고기】가 다른 작품들보다 머릿속에 오랫 동안 남는 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 이토준지스럽지 못하다. " 라고 이야기하는 독자들이 생겨버리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공포의 물고기】가 재미가 없었다거나 지루한 작품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새로운 시도와 기존과는 다른 형식으로 그려진 【공포의 물고기】는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이런 【이토준지】만의 기법을 본인 스스로 효율적으로 다듬어 지금보다 훨씬 개성 있고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함께 책을 덮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미미의 괴담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이토준지 공포박물관 6 - 10점
이토 준지 지음/시공코믹스
공포의 물고기 1 - 10점
이토 준지 지음/서울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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