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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베어뱅크(polarbearbank)
중국의 기담을 소재로 한 독특한 공포만화 - "제괴지이" 본문
만화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예전에도 언급한바 있지만 만화의 다양한 장르중에서 가장 그리기 힘든것이 "공포물"입니다. 아무리 섬뜩하고 무서운 장면을 그리려 해도 만화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때문에 독자들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킬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죠. 일본만화계에서 유명한 공포만화의 거장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토준지"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Ito Junji - 이토준지"의 공포만화를 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의 기괴한 세계관과 무서운 그림체는 무척이나 유명해진 상태이죠. 그와 같은 장르인 "공포만화"를 그리는 또다른 일본만화가가 한명 있습니다. 일본만화계에서는 나름 "이토준지"와 "공포만화분야"에서 그 영역을 양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Morohoshi Daijiro -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바로 그 당사자입니다.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로 국내에도 꽤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토준지"의 "공포만화"와는 그 노선이 확실하게 다릅니다.
아이러니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공포만화"는 전혀 "공포"스럽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만화책"이 독자들에게 공포스러운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어려운 매체인데 "모로호시 공포만화"는 "공포만화"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무섭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림체와 배경설정등으로 독자들의 공포감을 최대한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이토준지"의 "공포만화"들과는 확연하게 비교됩니다. 심지어는 무섭지 않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웃기기"까지 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공포만화는 "공포만화"라고 부르기 민망할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왜 "공포만화"라고 불리고 있을까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충분히 "기괴한" 만화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제괴지이"라는 작품은 어떤 만화책이며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어떤 만화가일까요?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들중에서 국내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 "제목"과 표지그림만 보고서는 "무섭겠다! 나는 무서운거 싫어하니까 절대로 읽지 말아야지!"라고 생각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판단착오일 것이다. 필자가 단연코 장담하는데 절대로 "무섭"거나 "공포"스럽지 않다. 심지어 "웃기다." 그것이 바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공포만화"가 지니고 있는 재미의 근원이다.
▶ 만화가 "모로호시 다이지로"에 대한 필자의 느낌
앞서 말했다시피 "제괴지이"는 유머스럽고 능청스러운 "공포만화"를 그리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대표작중의 하나이다.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도 재미 하나 만큼은 보장이 되어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보다 "제괴지이"를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가 어찌보면 작품을 읽게 된 순서에 따라서 그 재미가 결정되었다고도 할수 있는데 무슨말인가 하면 필자의 경우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를 먼저 읽었고 그로부터 2달여후에 "제괴지이"를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토준지"와 함께 일본공포만화의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모로호시 다이지로"라고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결과 나름 좋은평가들을 내리고 있는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토준지"가 그려내는 공포만화에 익숙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는 뭔가 "어설"펐다. 그리고 "어색"했다.
"도대체 이만화 뭐야?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개그물도 아니고 누구냐 넌!!!"
솔직한 필자의 감정이었다. 분명 만화전문가들 및 이책을 읽은 독자들이 "재미있다. 뛰어나다. 최고다."라고 했었던 것같은데 필자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괴상하다."라는 느낌만 받을뿐이었으니 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가?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 재미를 떠나 "독특하군."이라는 생각만은 분명하게 남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독특함"이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품의 "매력"이었고 "재미"였는데 그때는 필자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를 접한후에 한번더 속아보자는 심정으로 읽게된것이 "제괴지이"였다. 큰 기대 안하고 읽어내려가기 시작을 했는데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와는 달리 만화책속에 "풍덩"하고 빠져버린 필자를 발견할수 있었다. 왜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테츠카 오사무 만화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고 일부 국내독자들이 "이토준지보다 낫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만약 필자가 "제괴지이"를 먼저 접한후에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를 읽어보는 순서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세계관을 알게 되었다면 분명 다른 평가를 내렸으리라 생각이 된다. 실제로 "제괴지이"를 읽은후에 재차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를 읽어보니 처음과는 느낌이 많이 틀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그제서야 "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이해하게 된것이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 "제괴지이"의 특징과 스토리텔링
"제괴지이"는 중국의 괴기한 기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견귀"라는 주인공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에피소드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화이다. "기담"하면 어떤생각이 떠오르는가? 어느나라에나 "기담"은 존재한다. 그것이 각국 고서속에서 묻어날수도 있고 따로 "책"으로 엮여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최첨단 과학이 들끓는 21세기에 참신한 "기담"은 쉽사리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해도 과거 역사속의 "기담"만큼의 괴기스러움과 특이함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고서와 고사, 고전속에 담겨 있는 "기담, 괴설, 괴담"은 과학문명이 발달한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재미"를 선사해주는 것이다. 고서속의 "기담"을 읽다보면 그때 그시절에는 실제로 이런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착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뿐일까? 분명 "기담"은 "기담"일뿐이지만 "기담"은 "설화"와 종이한끗 차이니까 말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스스로가 "중국지괴(中國志怪)"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리게 된 "제괴지이"는 한자 뜻풀이 그대로 "기괴"한, "괴이"한 중국역사속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만화책이다. 중국의 기담소설 "요재지이"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데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서 재탄생시키고 뼈대위에 여러살을 붙여가며 만화를 완성해 나간다. "견귀"라는 논픽션인물과 "실제 읽다보면 진짜 있었던 일인것으로 착각하게끔"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중국의 "기담"을 기본으로 하기는 하지만 90%이상이 "뻥"인 이 만화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모로호시 다이지로" 개인의 철저한 실력과 능력때문이 아닐까?
마치 한권의 "고서" 혹은 "고전"처럼 보이는 독특한 겉표지가 인상적인 "제괴지이". 필자는 처음 이 만화책의 겉표지만 보고는 "만화책"이 아닌줄 알았다. 만화이지만 "고전"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수 있는 만화책은 드물다. 존재만으로 충분히 "유니크한" 만화책이며 그 재미과 몰입도 또한 일반적인 "만화"와는 차별화 된다. 본문의 구성도 "중국역사책"같은 느낌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책디자인이 만화책의 분위기와 이토록 일맥상통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기담"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실력만큼은, 상상속에서만 존재할 법한 표현과 장면을 만화로 그려내는 실력하나만큼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이토준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법도 하다. 무섭지는 않지만 "괴기스러운" 만화. 어쩌면 대놓고 섬뜩한 "공포만화"를 창작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말이다.
▶ "제괴지이"의 기괴한 이야기들
"제괴지이"에 담겨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게다가 "기담과 괴담"을 바탕으로 한 만화이기 때문에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이생물(異生物)들이 등장하거나 요괴들이 등장한다. 길가는 행인을 물어뜯는 돼지얼굴에 개의 몸뚱아리를 한 견토, 오나라의 제갈각이 단양태수로 있을때 산속에서 만난 어린아이요괴, 귀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살아가는 귀성, 인간을 홀려서 그의 내장을 파먹는 마귀부인, 소인도깨비, 요괴잉어등등 셀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기괴한 생물들이 수많은 "기담"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준다.
그렇다고 기괴하고 무서운 내용의 에피소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훈"이 담긴 이야기나 "우스운"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모든 이야기들의 중심에 "기담과 이형세계"가 배경이라는 것과 "아귀"라는 아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귀"는 어렸을때부터 남들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혼, 귀신, 요괴를 볼수 있다고 하여 "견귀"라고도 불렸으며 스승인 "오행선생"을 따라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태어난 마을을 일찌감치 떠난다. 그런 "아귀(견귀)"가 "오행선생"과 함께 중국전역을 돌아다니며 "요괴, 귀신, 기괴한 현상"등을 다양하게 겪어가며 성장하는 커다란 전체적인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만큼 "제괴지이"라는 만화의 이야기가 흥미로운지를 증명해준다.
"제괴지이"의 배경무대는 "시오리와 시미코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이다. 그것이 가상의 세계이며 하나의 "이야기"일뿐이라고 독자들은 알고 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과거 중국 어딘가에서는 있었을 법한 일이라고 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과학문명이 최첨단화 된 21세기에 아직도 무당과 점쟁이, 도사가 존재하며 때로는 그들을 통해서 "異계"와 접촉하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면에서 보면 "제괴지이"의 이야기들이 그닥 우리내 모습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수도 있다는 착각과 상상. 그런 착각과 상상들을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생산시켜내는 "제괴지이"는 어쩌면 "요서(妖書)"일지도 모른다.
1~3권까지는 "오행선생"과 그를 쫓아다니며 수행하는 주인공아이 "아귀(견귀)"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룬다면 "4권"부터는 성인이 된 "아귀"가 "오행선생"의 뒤를 이어 다양한 "요괴"들과 대적하는 좀더 스피드 있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가 진행된다. 때로는 "오행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때로는 스스로 습득한 "무술실력"을 발휘하여 숱한 "요괴"들의 "도발"과 "습격"에 맞선다. 그런 "아귀"에게 "오행선생"이 내린 숙제가 하나 있는데 그 "숙제"는 상상할수도 없는 중요한 일이라고만 "아귀"는 알고 있을 뿐이다. "오행선생"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며 "아귀"에게 스스로 깨우치라고 알려준 "숙제"는 무엇일까? 그 "숙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아귀"의 여행이 어쩌면 "제괴지이"의 본격적인 이야기이자 2부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괴지이"는 본격적인 "아귀"의 여행이야기가 시작되는 "4권"에서 더이상 발매되지 않고 있다. 이미 4권이 발행된지 3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권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모이지로 다이지로" 스스로가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지난번 "히어로 주식회사"도 4권에서 급하게 마무리된 미완결만화나 마찬가지라고 소개했는데 이번 "제괴지이" 또한 4권에서 더이상 다음권이 나오지 않는 "미완결" 만화이다.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히어로 주식회사"는 이미 작가가 "완결"이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했으나 "제괴지이"의 경우 "아직 다음편"이 나오지 않고 있을뿐 미완성된 이야기로 "완결"이라고 결론지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권이 언제쯤에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애시당초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이 된 "제괴지이"를 즐기는데 큰 무리는 없기에 "히어로 주식회사"만큼이나 아쉽지는 않다. 단지, 앞으로 펼쳐질 "아귀"의 이야기를 좀더 구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할 뿐.
▶ 결론은 "재미있다" 그러니 "읽어라"
"제괴지이"같은 깊은 맛은 지닌 일본만화책을 읽을때마다 "일본만화계"의 놀라운 상상력과 튼튼한 기반이 무척이나 부럽다. 한국만화들과 한국만화가들 또한 예술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수 있는 "상상력"에서 일본만화에 절대 뒤지지 않는 가능성과 힘을 지니고 있지만 "웹툰"이라는 새로운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현상과 지면만화의 몰락으로 인해 스토리가 없는 단발성 웃음을 유발하는 만화들이 인기가 있고 "이야기"와 "상상력"이 존재하는 개성있는 만화들이 인기와 인지도가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한 지금의 형태로는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이시간에도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만화가"로서의 근본적인 재능과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존재하는한 앞으로 한국만화가 충분히 빛을 볼날이 올것이라 믿는다.
여하튼 "오행선생"과 "아귀(견귀)"를 통해서 기괴한 중국기담속으로 빠져들도록 교묘한 장치를 만든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제괴지이". 남녀노소 누구든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읽어보자.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접해보자. 왜? "재미있으니까."
제괴지이 1 -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시공코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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