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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구정물 같은 혼돈의 세계, 그것이 바로 "도로헤도로" 본문

오로지 만화 이야기뿐/만화 읽어주는 남자

진흙구정물 같은 혼돈의 세계, 그것이 바로 "도로헤도로"

☆북극곰☆ 2010. 10. 23. 07:30


 만화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일본어로 "도로헤도로"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진흙구정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만화책의 제목만큼이나 진흙구정물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미 인터넷상에서 불법스캔본으로 오래전부터 일부 만화매니아들에게 읽혀왔던 "도로헤도로"가 그것입니다. 독특한 작품들이 즐비한 일본만화계에서나 만들어질법한 이 만화는 영화장르로 따지자면 고어물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만큼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과극이었죠. 첫장면부터 압도당해서 이 작품의 마법같은 흡입력에 매니아가 되는 독자, 아니면 쓸데없이 잔인하고 거북한 장면들을 전면거부하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는 독자. 필자의 경우에는 전자였습니다. 대충 그린듯한 거친펜선에서 녹아나는 디테일한 장면묘사는 "이 만화는 절대로 국내에 정식발매 될수 없겠다" 라고 생각했었답니다. 하지만 이번에 "시공사"에서 이작품을 정식으로 발매하였습니다. 잔인함과 끔찍함으로 인해서 국내에 절대 발매될수 없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도로헤도로"의 광팬들에게는 기쁜소식일수 밖에 없죠. 그것도 무삭제완전판으로 말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고어영화에 버금가는 썸뜩한 장면들로 그로테스크한 맛이 가득한 "도로헤도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우리 시공사가 제대로 사고쳤어요.

 "시공사"는 국내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대형출판사이다. 전재국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시공사"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출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만화책"출판에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 개인적으로 친숙한 출판사라고 할수 있다. 이런 "시공사"가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좋은 의미로) 국내에는 절대로 정식출판될수 없을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도로헤도로"를 무삭제로 정식출판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만화좀 읽을 줄 안다." 라고 하는 일부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불법스캔해석본을 감상해 본 경험이 있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공사"의 "도로헤도로" 정식출간은 작품의 특징만큼이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도로헤도로"라는 만화가 어느정도로 잔인하고 재미가 있길래 이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이 "국내에 정식출간 절대 불가능"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이구동성으로 외쳤을까? (당연하게도 이작품은 19세 미만 구독불가)
 
 
 10월, 국내에 정식으로 출간된 "도로헤도로"의 1권과 2권의 겉표지. 이미 표지에 그려진 인물들의 분위기만으로 이작품의 대략적인 컨셉을 추측할수 있지 않은가? 국내출간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에는 다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본판 "도로헤도로" 단행본에서 표지에 "형압"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는데 (형압이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올록볼록한 무늬를 의미한다.) 이번 "시공사"측에서 정식으로 "도로헤도로"를 출간하면서 이런 "형압"또한 그대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시공사"측에서 얼마나 이작품의 정식출판에 신경을 썼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수 있을듯. 이미 일부 온라인서점에서는 만화부분 베스트셀러를 차지할 정도로 판매부수도 생각이상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단순히 잔인한 고어만화라고 생각하고 기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블랙판타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도로헤도로".

 "도로헤도로"는 첫장면부터 독자들을 압도한다. 실제 이보다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만화책들이 많긴 하지만 "도로헤도로"가1999년도에 만들어진 만화라고 생각한다면 당시에 굉장히 큰 이슈를 몰고 왔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수 있다. 이 만화를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읽어왔던 독자들은 뭐라 한단어로 콕 찝어서 장르를 정할수 없다고 흔히들 얘기하는데 사실 정식장르는 "드라마 액션"이다. 그러나 드라마 액션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섬뜩하며, 굉장히 잔인하고, 세계관이 독특하다. 할렘가의 풍경과 흡사한 공간적 배경에서 진행이 되는 이 만화속에는 "마법사"와 "마법사가 아닌자"로 인간의 종류가 나뉜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홀" 과 마법사가 살고 있는 "홀"이 있다. 두 "홀"을 잇는 문을 통해서 "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이 아닌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마법연습을 하러 넘어오는데 마법능력이 없는 인간들을 멋대로 괴롭히고 죽여버리는 "마법사"들의 모습은 흡사 다리다친 생쥐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툭툭치는 고양이와도 같다. 그들의 마법연습 대상이 된 인간들은 형이상학적인 모습으로 변형이 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죽고 마는데 "마법사"들은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마법사가 아닌자"들을 끊임없이 사냥한다.

※ 마법사의 연습대상이 된 인간은 이런식으로 흉물스러운 괴물로 변하고 만다. ※

 판타지다. 이 작품은 마법사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만화라고도 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해리포터나 간달프 할아버지처럼 보기좋은(?)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아닌 보기나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판타지세계이다. 블랙판타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인간들을 자신들의 마법연습도구로 사용하는지 작가는 불친절하게도 설명따위 하지 않고 있다. 블랙판타지만화중에서 이정도로 독자들의 가슴을 탁 막히게 하는 만화도 드물기 때문에 "도로헤도로"는 독특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장면부터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주는 장면. 마법사의 목을 거침없이 절단해 버리는 이만화의 주인공 "카이만"은 마법사에게 공격을 당해서 얼굴이 "도마뱀"으로 변하였다.
 
 
▶ 작가의 불친절한 스토리텔링

마법사에게 연습대상이 되었었던 "카이만"은 그이후로 얼굴이 도마뱀으로 변하였다. 진짜 자신의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카이만은 자신의 얼굴과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 "문"을 통해서 인간의 "홀"로 넘어오는 마법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한다. 한마디로 인간들의 편에서 "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할수 있는 것인데 딱히 인간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원래 얼굴을 되찾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곁에는 미스테리한 미녀 "니카이도"가 항상 그를 도와주고 있는데 "카이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편안한 친구. 그녀는 도대체 왜 "카이만"과 함께 "마법사"사냥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카이만"은 어떤 마법사에게 공격을 당해서 얼굴이 도마뱀으로 변하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도로헤도로"의 스토리이다. 사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적인 스토리이자 세계관인데 작가인 "하야시다 큐"는 퇴폐적이고 음험한 장면설정으로 "마치 뭔가 있는것 같은데?" 라는 상상력을 독자들이 스스로 발휘하게 만들어 낸다. 캐릭터와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하야시다 큐"의 스토리텔링은 만화를 읽는 독자들입장에서는 불친절하고 성의 없는 만화가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하게 잔인한 고어물로만 취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들만 그려낸 작품이었다면 정식발간이 되자마자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수 없었을 것이니까 말이다. "도로헤도로"는 독자들을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 개성넘치고 익살스런 캐릭터들의 블랙코메디

 이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인함과 끈적일정도로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북함이다. 잠시 이 만화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일부 감상해 보자.



 일부 이런 장면들을 싫어하는 분들을 위해서 필자심의기준에 의해 덜한 장면들로만 모아논 것인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진흙구덩이 같은 장면장면들이 "도로헤도로"의 최대특징.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특징"이 "장점"으로 이어지란 법은 없다는 것인데 독특함과 잔인함으로 어필한다면 동일 장르의 그렇고 그런 작품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괴작이 될뿐이다. "도로헤도로"가 수많은 독자들에게 칭찬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암울한 세계관, 역겹고 불결한 마법사들의 생활모습만을 두고 보았을때는 만화책을 읽고 난후에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은 당연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이게 도대체 무슨말일까? "도로헤도로"의 겉껍데기만 볼때는 고어물을 표방하고 있는 삼류화장실만화 인듯하지만 근본적으로 "블렉코메디"라 불려도 손색없는 개그와 훈훈함이 존재한다. 괴상망측한 가면을 쓰고 다니는 마법사들의 진짜 얼굴은 평범한 동네 형, 누나, 구멍가게 아저씨나 마찬가지, 하는 행동들도 가면을 쓰고 인간을 사냥할때 외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어딘가 모르게 모양 빠지는 행동들로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카이만과 마법사들. 분명 잔인한 캐릭터들인데 유쾌하다. 쉽사리 이해할수 없을지도 모를테니 백문이 불여일견. 이 만화책을 직접 읽어본다면 필자가 얘기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이 만화, 확실히 유쾌하고 웃기기 때문에 역겨운 장면들도 용서된다. 자칫 어두워질수도 있는 만화를 "하야시다 큐"는 블랙코메디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맛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만화가 바로 "도로헤도로"다.


인간들을 서슴없이 죽여버리는 "마법사"들의 단란한 한때. 가면을 쓰고 있을때는 한없이 섬뜩한데 가면뒤에 숨겨진 얼굴은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어른아이같다는 느낌이 든다. 피비린내나는 전투속에 있지 않을때는 밥도 해먹고, 도박도 하고, 꽃도 가꾸는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미워할수가 없는 것이다.

▶ 거친 펜선으로 그려진 작화
 
 작품의 장르와 특징에 맞는 그림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류의 만화에서는 깔끔하고 정갈한 그림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품의 분위기에 걸맞는 거칠고 불투명한 그림체가 제격이라는 말이다. "하야시다 큐"는 그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꽤뚫고 있는 영리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거칠게 그려낸다. 잔인한 장면들을 표현하는 부분부터 색채과정까지 어두우면서도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물씬 느껴지도록 말이다. 거북하게 느껴질법도 한 이런 작화스타일이 작품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독자들이 작품속에 좀더 몰입할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 눈을 크게뜨고 만화책장을 천천히 넘기게끔하는 그림체를 지닌 만화가들은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은 그런 능력을 "하야시다 큐"는 "도로헤도로"를 통해서 마음껏 자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잔인하며 역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만화책을 읽어본다면 그림체의 독특함과 캐릭터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 놀라지 말자. 이 작품의 작가는 여자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있다. 이 만화의 작가인 "하야시다 큐"는 34살의 젊은 일본 여성만화가라는 것이다. 여성만화가들이 모두 호수같은 눈망울을 지니고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캐릭터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만화가들이라고 사랑얘기만 그리고 예쁜 캐릭터만 그려야 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시대는 변했고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분야에서의 감성표현이 남성들보다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잔인하고 역겹고 더럽고 끈적끈쩍한 만화라고 소개한 "도로헤도로"의 작가가 여성이라는 진실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것도 일본의 소학관 "IKKI"라는 월간잡지에서 1999년부터 꾸준히 연재해온 작품이라는 것은 이작품을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양한 작품을 그려낼수 있는 시장성을 뛰어넘어 여성만화가들도 이런만화를 그릴수 있는 환경이 1990년대부터 조성되었던 일본의 만화계에 살짝 부러움을 내비치면서 오늘의 "도로헤도로" 소개를 마치려 한다. 앞에서 설명하길 이만화에 등장하는 잔인한 "마법사"들은 "가면"을 쓰고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고 했었다. "도로헤도로"라는 이 만화도 언뜻 보기에는 거부감이 드는 내용과 그림일지라도 그 가면을 한꺼풀 벗겨내면 독특한 매력과 재미에 빠질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소개한 하나하나의 자극적인 장면들만으로 이작품을 거부하진 말자.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명작반열에 오를수도 있는 기괴한 만화작품 하나를 읽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일 테니까…. 

도로헤도로 Dorohedoro 1 - 10점
하야시다 규 지음/시공사
도로헤도로 Dorohedoro 2 - 10점
하야시다 규 지음/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