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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콤(FC) 천지를 먹다2 제갈공명전 공략1 - 아군장수 목록 본문
★ 게임명: 천지를 먹다2-제갈공명전
★ 제작사: 캡콥
★ 장르: RPG
★ 발매일: 1991-04-05
★ 발매가: 8,500엔
★ 소개: 1991년에 발매된 FC(패미콤)의 삼국지게임. 캡콤에서 발매된 횡스크롤 액션게임인 천지를먹다시리즈와는 달리 드래곤퀘스트 형식의 RPG 게임이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의 압박이 크지만 게임팬이라면 한번쯤 즐겨야 하는 명작이다.
아군장수 목록 (합류 후 중도이탈하지 않음) -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역대인명사전 참고
(우)관색: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 관우의 셋째 아들로 알려져 있다. 제갈량이 남정할 때 선봉이 되어 맹획을 붙잡는데 공을 세웠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기록을 찾을 수 없는 허구의 인물이다. 민간설화에서 만들어진 인물로 보인다.
(우)마대: 촉의 장수. 마등의 조카로 마등이 조조의 손에 죽자 사촌인 마초와 함께 숙부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나 실패한다. 후일 마초와 함께 촉에 귀순하여 많은 공을 세운다. 제갈량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위연이 모반했을 때 그를 죽인다.
(우)마속: 백미로 유명한 마량의 5형제중 막내동생이다. 이적의 추천으로 유비의 참모가 되어 형주종사로 임명되었다. 제갈량이 마속의 재능을 인정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비는 말이 앞서는 인물이라 평가했고 228년 제갈량이 북벌정책을 추진하면서 위를 공격하는데 이때 기산에 군대를 주둔하면서 마속이 선봉에 서게 된다.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다가 위의 장합에게 대패한다. 이 책임으로 마속은 죽음을 당하는데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을 참한다는 읍참마속의 고사가 생겼다.
(우)맹달: 자는 자경. 원래 유장의 수하에 있었으나 장송, 법정 등과 함께 유비를 도와 촉을 차지하도록 힘쓴다. 후일 관우를 돕지 않아 문책을 받자 위에 항복하였다. 제갈량이 위를 칠 때 다시 촉에 귀순하려 하였으나 사마의에게 패하여 죽는다.
(우)엄안: 원래 유장 수하의 명장이였다. 촉 평정전에서 고전하던 유비를 돕기 위해 장비가 촉으로 들어갈 때 교분을 맺어 유비를 섬기게 된다. 뒷날 황충을 도와 노익장을 과시하며 조조의 대장 장합과 싸워 연패시켰다.
(우)오의: 자는 자원이었다. 원래 유장에게 속해 있었는데 그의 여동생이 유장의 형 유모에게 시집가자 유장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일찍이 유장의 큰아들 유순과 함께 낙성을 지키며 유비에게 저항했다. 건안 19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그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받아들이고 나중에 황후로 세우니 촉한의 국구가 되었다. 일찍이 제갈량을 따라 북벌했다.
(우)위연: 장사 태수 한현을 죽이고 유비에게 항복한다. 촉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우나, 늘 불만이 많아 제갈량의 경계를 받는다. 제갈량이 죽자마자 바로 모반하였는데 이에 미리 대비한 제갈량의 비밀 계책으로 마대에 의해서 허무하게 죽임을 맞는다.
(우)장완: 자는 공염. 제갈량, 비위, 동윤과 함께 촉한의 사상으로 꼽힌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 형주서좌로 역할했으며 광도현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았지만 술만 마시고 방탕하자 유비가 격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제갈량은 장완의 재능을 인정하여 가벼운 처벌만 받게 하였다. 이후 제갈량을 도와 남방정벌, 북방정벌에서 후방을 지키며 물자를 공급하였다. 제갈량이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후임이 되어 대사마에 올랐다. 제갈량이 추진한 북벌을 계속 추진하다가 병환하였다.
(우)제갈량: 명실상부한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이자 정치가.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일컬였다. 유비를 도와 오나라의 손권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를 점령하였다. 221년 형주의 멸망으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유비 사후에도 촉나라의 대승상으로서 어리석은 유선의 행태도 마다하지 않고 촉을 위해서 죽기직전까지 위나라와 겨루었다.
(우)황충: 형주 난양출신으로 동한 말년 유표수하에 있었으나 촉한의 유비에게 귀순하였으며 219년 유비가 한중을 공략했을 때에는 정군산에서 위국의 하후연을 죽여 촉한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공적으로 정서장군에 올랐다. 같은 해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후장군까지 올라 관내후에 봉해졌다. 활을 잘쏘기로 유명하였으며 엄안과 함께 촉의 노장 장수로서 많은 공적을 세웠다.
아군장수 목록 (합류 후 중도이탈하거나 사망) -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역대인명사전 참고
(우)감부인: 유비의 부인. 유비에게는 미부인과 함께 두 부인이 있었다. 미부인은 유선의 생모도 당양싸움에서 조운에게 아두를 부탁하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그 후 감부인 혼자 유비를 받들다 적벽대전 직후에 세상을 떠났다.
(우)노소: 위나라의 장수로 유비가 연판장 혈서를 쓰고 원술토벌을 핑계로 도망칠 때 조조가 감시를 위해 붙인 장수이나 유비가 돌려 보냈다.
(우)문추: 원소 막하의 용장. 백마의 전투에서 조조의 장수 장요, 서황을 상대로 싸워 장요를 쏘아 말에서 떨어지게 하였으나, 조조에게 얹혀 있던 관우에게 죽임을 당한다. 본시 안량과 함께 원소의 자랑하던 장수였는데 정사에서는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만 나온다.
(우)안량: 문추와 함께 원소 막하의 용장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백마전투때에는 조조의 막하에 든, 본시 여포의 대장인 송헌, 위속을 차례로 베어 조조진의 두려움을 샀다. 그러나 조조에게 위탁하던 관우에게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목이 베인다.
(우)장비: 유비, 관우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 의를 지킨 인물이다. 평생동안 싸움터를 전전하며 수많은 공을 세웠는데 특히 장판교에서 단기필마로 조조의 100만대군을 물리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여포, 마초등과 좋은 싸움을 벌였고 서촉을 취할때에는 파군성의 엄안을 의로 대하여 귀순시키기도 하였으며 한중을 취할 때도 와구관에서 장합을 맞이하여 지혜롭게 싸워 이를 물리친다. 촉의 오호대장군중 한사람이며 후에 관우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과음하다가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장팔사모를 사용하였다.
(우)뇌동: 원래는 유장 휘하의 장수로 오의와 함께 유비군을 막지만 포위되어 항복했다. 파서의 수비에 종사하면서 한중 와구관싸움에서 장비의 부장으로 활약했으나 위의 장수 장합의 계책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아군장수 목록 (특정조건을 만족해야만 합류) -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역대인명사전 참고
(우)여포: 명실공히 삼국지 최고의 무장중 한명. 그 힘은 천하를 호령하고 유비,관우,장비와의 3대1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조및 조조 휘하의 맹장들과도 겨루어 한치의 밀려남이 없었기에 조조에게도 골칫덩어리였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무력에 비해서 어질지 못하고 어리석어 수많은 책략과 전술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초선때문에 동탁을 배신한 일화는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중 하나.
(우)장소: 손권의 모사. 팽성 사람으로 자는 자포. 손책이 원술에게서 돌아올 때 주유의 추천으로 그의 막하에 들었다. 본시 문신이라 사람됨이 소심하고 침착하여 적벽대전을 앞에두고 사리를 들어 신중론으로 조조에게 항복하기를 주장하다가 실패하였으나 매양 소극적인 입장에 서서 경솔한 정책을 간하였다. 손권이 형주를 되찾고자 출병하러 하였을때는 유장과 장로에게 동시에 사신을 보내 유비를 고립시키는 꾀를 내었다. 손책이 죽을 때는 손권을 보호하라는 유촉을 받았으며 손권도 그를 높이어 장공이라 부르고 감히 이름을 부르지 못하였다. 죽은 후 문후라 시호하였다.
(우)하후돈: 조조의 상장으로 조조와 사촌지간이다. 하후연(夏侯淵)과 처음부터 따라다녀 누차 전공을 많이 세웠다. 제갈공명의 첫 싸움지인 박망파에서 대장으로도 출전했었으며, 특히 여포와의 싸움에서 조성의 화살에 왼쪽눈을 맞았으나 '부모의 정이 뭉친 몸을 버릴 수 없다'라며 화살을 뽑아 눈을 삼키는 용맹이 유명하다. 거의 반평생을 애꾸눈으로 싸움에 임하였다. 조조에게 높은 신뢰를 얻었으며 조비의 대에 이르러서 대장군에 올랐다.
(좌)주유: 손책과 죽마지우 사이였다. 젊어서부터 도략이 넓고 장수재목이었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수전에 능했으며 손책이 강동을 차지했을 때 이미 건위중랑장을 맡고 있었다. 손책의 사후 병권을 잡고 적벽에서 조조를 화공으로 대파시켜 이름을 크게 떨쳤다. 유비를 경계하며 미인계를 쓰기도 하고 제갈량과 대립한다. 젊은 나이인 36세로 요절하였는데 강동의 절색인 소교의 남편이었다. 죽으면서 '하늘은 왜 주유를 탄생시키고 또 제갈량을 탄생시켰나?' 라는 말이 삼국연의에 전한다. 용모가 수려하여 '미주랑'이라고도 불리었다.